해외에서도 높아지는 인기. 「미치시게상을 따라간다면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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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그룹명에 서력의 마지막 두자리를 더한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모닝구무스메'14"는, 이해 가을에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단독 콘서트를 실현시켜, 개연 몇 시간 전부터 긴 행렬을 잇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최후의 플라티나기" 미치시게 사유미가 졸업하기 겨우 1개월 전의 일이다. 


「저에게 있어서 첫 뉴욕 공연이었지만, 어쨌든 성원이 대단했어요. 해외의 팬분들이 모닝구무스메의 곡으로 춤춘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외국의 팬들을 눈으로 보고 해외에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세계악수회 등도 개최하게 되고, 알게 된 것이 있어요. 해외의 분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일본에서의 활동을 보다 전력으로 힘내야만 해. 진심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해외까지 닿기 시작하고, 자신의 나라에도 『와주길 원해』라는 말을 해주셔요. 그 길이 중요하다고 통감했습니다.」


회장에는 뉴욕 양키즈의 다나카 선수와 사토다 마이 부부도 서둘러 달려와, 그 모습이 방송사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플라티나기부터 체현해온 "멋있는 모닝구무스메"는, 드디어 세계에서도 평가받는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 같은 해 11월 26일 요코하마 아레나 공연을 마지막으로 미치시게 사유미가 졸업한다. 바톤을 넘겨받은 것이, 9기 멤버인 후쿠무라 미즈키. 18살로 리더 취임은, 그룹 역사상 최연소였다.






「미치시게상은 일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는 방법이 대단해서, 세세한 곳까지 하나 하나 확실히 빠트리지 않아. 특히 리더가 되고나서는, 『전사인가』싶을 정도로 씩씩해서, 스테이지에 선 모습도 정말 멋졌어요. 스테이지 밖에서도, 사람을 접근시키지 않고 집중해서 대본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미치시게상만 사진 촬영에서 NG를 하나도 내지 않는다던가...... 어쨌든 모든 것이 대단했어서, 『미치시게상을 따라간다면 틀림없어』라고 저희 후배도 강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때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목표로하고 있는 곳은 같다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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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무라는 2011년 1월에 신멤버로 그룹에 가입하여, 2년반 후에는 서브리더에 취임. 그리고 2014년부터는 9대 리더가 되어, 2018년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현역 멤버이다.


한 편 미치시게는 플라티나기를 견뎌내고, 그 최후의 1인으로서 그룹을 견인, 밖에서는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활약하며 "모닝구무스메"의 이름을 세간에 재인식 시켰다. 같이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확실하게 보증을 선 아카시야 산마나, 「아릅답다」고 절찬한 마츠코 디럭스, 팬을 공언하는 야나기하라 카나코나 오오모리 야스코 등, 유명인들에게서도 지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거의 전설화되어 있는 "미치시게 사유미" 라는 존재는, 후쿠무라에게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주변이 안심할 수 있는 리더였던 미치시게상에 대해선, 그야말로 신과 같아 보였으니까, 자신과 비교해버리면, 못하는 것 투성이라 마음이 꺾일 것 같아져요. 거기다, 동시기에 서브리더를 맡고 있던 하루난(이이쿠보 하루나)은 능숙하게 잘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부럽게 생각하거나 여러 압박을 느껴버려서, 멤버끼리 언쟁을 하거나, 부딪히는 일도 있었어요. 누구나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네요」






그 당시의 모닝구무스메에는, 그녀나 이미 큰 인기가 있었던 사야시 리호가 있는 9기를 정점으로, 현재도 서브리더를 맡고 있는 이이쿠보 하루나나 센다이 출신으로 뛰어난 댄스 실력을 가진 이시다 아유미를 보유한 10기. 뛰어난 재능으로 가입 때부터 화제를 부른 유일한 11기이기도 한 오다 사쿠라에, 가입 직후의 12기가 더해진 총 13명이 재적하고 있었다.


「9기에서 11기까지는 가입한 시기가 가까운 것도 있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은 다들 같고,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 12기 신멤버가 가입한 시기에, 11기까지의 9명이 모여 이야기를 해보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의견이 엇갈려버렸어요. 모두 모닝구무스메에 대한 생각이 강하니까, 각자가 여러 제안을 내와서, 여러가지로 시도해왔지만, 의견이 부딪히는 일도 잔뜩 있었어요.」




역시 하나가 되는 순간은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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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도 있었던 "플라티나기"를 알고, 세간에서의 지명도도 높은 "미치시게 사유미"라는 절대적인 지주가 졸업하여, 그룹에는 젊은 축만 남게 되었다. 주축을 잃은 멤버가 뿔뿔이 흩어지는 위기를 느낀 후쿠무라는, 일단 자신이 바뀌자고 결의한다.


「역시 미치시게상이 빠진 구멍은 커서, 뭉쳐지지 않고 전원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인상이었어요. 그 때, 『리더인 내가 변하지 않으면 멤버도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서툰 성격이니까, 멤버를 능숙히 이끌진 못하지만, 항상 다른 멤버가 도와주고 있었어. 그러니까 과감하게, 모두에게 맡기는 일을 늘렸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야시 리호와 이시다 아유미의 댄스라던가, 오다 사쿠라의 노래를 잘하는 부분이라던가, 사토 마사키의 폭탄 캐릭터라던가(웃음),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을 환경을 만드는데 유의했어요. 그러면 저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멤버의 장점을 더욱 끌어내려고 힘냈어요. 그건 팬분들에게도 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녀의 리더로서의 큰 성과라고 말해지는 것이, 2015년 봄의 전국 투어 최종 공연으로서, 일본 무도관에서 피로한 스테이지가 되겠다. 당시의 아이돌 업계는, 「전국시대」에서, 다수의 후발 그룹이 탄생하여 「포화기」라고도 할만한 상태로 향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모닝구무스메'15의 13명은, 합이 맞는 훌륭한 포메이션 댄스로 관중을 매료. 다수의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뛰어난 존재로 각방면에서 절찬받게 된다. 


「멤버와 함께 넘어서서,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역시 하나가 되는 순간은 콘서트구나』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그리고 후쿠무라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때, 사야시는 졸업을 결심하고 있었어요





사야시의 꿈을 모닝구무스메가 빼았는 것은 더욱 안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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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시게 사유미라는 주축을 잃고, 뿔뿔이 갈라질 것 같았던 모닝구무스메를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낸다」라는 접근으로 다시 뭉치게 만든 9대 리더 후쿠무라 미즈키. 2015년 봄 투어 파이널인 일본 무도관 공연에서는, 관객에게서 큰 성원이 일어 보기 좋게 스테이지를 피로해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에이스로 성장하고 있었던 사야시 리호가 졸업을 결심한 공연이기도 했다. 사야시는 같은 해 가을에 블로그에서 졸업을 발표하고, 그 해 마지막 날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갔다.


「역시 분하다는 기분이 강했어요. 미치시게상의 졸업을 배웅한 9기에서 11기까지의 9명이 목표로하고 있던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어요. 기분은 엄청 가라앉았어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꿈을 우리가 빼앗는 것은 더욱 안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이 멤버로 있을 수 있는 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모닝구무스메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룹이라고 새삼 통감했어요.」 


졸업과 가입의 반복으로 대사를 촉진하여,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그룹으로 계속 있는다. 이것은, 이 연재에서 각 리더가 말해온 모닝구무스메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이다. 멤버가 바뀔 때마다 느끼는, 쓸쓸함이나 슬픔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넘어선 앞에는, 각각의 멤버나 그룹 전체의 성장이 있었다.






「변화에 대해서 침울해지는 일은 잔뜩 있었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어요. 거기다 제가 불안을 느끼고 있으면, 팬분들에게도 전해져버려요. 그러니까 지금은, 졸업이나 가입을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하고 앞을 향하여, 즐겁게 받아들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때라도 자신을 가지고, 겁없이 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멤버도 그렇게 있어주길 원해요」





아이돌이 이렇게 춤추다니 의미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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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받아들이고 나아갈 결의를 한 후쿠무라가 이끄는 모닝구무스메는, 또 새로운 시스템으로 걸음을 내딛게 된다. 2016년 2월, 사야시의 졸업으로부터 2개월 정도가 흐른 "모닝구무스메'16"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개최된 이벤트의 메인액트로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프리회장이었지만, 처음엔 저희 팬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점점 사람이 늘어서, 최종적으론 6000명 정도가 모여주셨어요. 현지의 분들은 『아이돌이 이렇게 춤추다니 의미를 모르겠다』고 놀란 모양이라, 그건 역시 퍼포먼스가 평가되었다는 것이겠죠」


플라티나기에 주장한 "멋있는 모닝구무스메"의 집대성의 하나인 포메이션 댄스는, 재차 세계에서도 평가되었다. 그건 다른 아이돌 그룹은 흉내내지 못 할 퍼포먼스라는 자신도 있다.


「지금은 AKB48분들이나 노기자카 46분들, 케야키자가46분들 등 여러 아이돌이 있지만, 저희가 더 춤추고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자신은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엔터테이먼트의 본고장에서 관객에게 갈채를 받을 정도의 퀄리티까지 높여나가는데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을 즐기는 마음을 가르쳐준 것이 다카하시 아이였다고 한다.


「저는 원래, 제가 서는 위치 등을 신경써서, 대인원 속에서 눈에 띄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카하시상을 보고 있자 『노래나 댄스는 즐기는 것이구나』라는 것이 엄청 전해져왔어요. 다카하시상이 전신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고, 퍼포먼스는 일단 자신이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로 하는게 아니라, 행동이나 등으로 가르쳐준 것이 다카하시상이었어요. 물론 연습 등 힘든 때도 있지만, 그런 때야말로 멤버끼리 서로 격려하니까요」


그리고, 동료를 지지하고, 기쁨을 나누는 리더상은, 니이가키 리사에게서 배웠다.


「니이가키상은,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세세히 제대로 봐주셔서, 주의를 줄만한 일은 물론 제대로 말하셨지만, 자주 칭찬해주셨어요. 그게 그 시절의 저에게는 정말로 기뻐서, 그 기쁨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욱 제가 리더가 되고 나서는, 저도 후배에게 똑같이 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되었어요」




단순한 여자아이 집단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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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지금 그룹을 이끄는 후쿠무라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다는데.


「요코하마 아레나에서의 졸업 콘서트로 미치시게상이 말씀하셨던, 『나도 몰랐던, 더욱더 큰 풍경을 모두는 봐줬으면 좋겠어』라는 꿈은, 역시 이루고 싶어요. 모닝구무스메'14 시절 멤버의 꿈은, 전부 이루고나서 졸업하고 싶어요.  그 하나로서, 저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까지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설 자격이 있는 그룹이 되고 싶어. 마구마구 공격적으로 가고 싶어요」


「저는 모닝구무스메를, 단순한 여자아이 집단으로 만들고 싶진 않아요. 이전, 처음으로 아크로바틱에 도전했을 때도 모두를 놀래켰다고 생각하지만(웃음), 『이번엔 이런 것을 하고 있어!』라고 모두에게 신선한 기분이 들게 할만한 일에, 더욱 도전해보고 싶어요!」






플라티나기에 대한 동경, 지금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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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역사 중에서, 모닝구무스메는, 멤버의 졸업과 가입, 계승과 개혁을 반복했다. 한 때의 침체에도 지지않고,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댄스 스킬에 특화"가 돌파구가 되리라 믿고 단련을 계속했다.


그 결과, 복권을 달성한 그룹의 현 리더로서, 더욱 위를 노리는 그녀는, 플라티나기라 칭해지는 선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그 시절의 모닝구무스메가 순수하게 너무 좋아서, 오디션에 참가했어요. 그리고, 당시의 선배분들에게는 힘든 고생이 있었던 것을, 멤버로서 활동해가는 와중 알았습니다. 2011년의 다카하시상(다카하시 아이)의 졸업 공연에서, 저는 처음으로 일본 무도관 스테이지에 서게 되었어요. 그때, 송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받은 찬스를 헛되이 하면 안된다고, 『앞으로는 내가 선배의 마음을 이어 받을 거야!』라는 강한 마음으로 스테이지에 설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선배분들이 데려가주셨던 장소나 노리고 있던 꿈을, 후배들이 소중히 생각해요. 지금의 모닝구무스메'18이 사랑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선배분들이 남겨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동경하고 있던 모닝구무스메는, 지금도 제대로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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