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P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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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7. 16. 00:17
작성자
완키

 

모든 소녀들을 위해서.
모든 소년들을 위해서.
언젠가 소녀였던 자들을 위해서.
언젠가 소년이었던 자들을 위해서.
지금도 소녀로 있을 그녀들을 위해서.
지금도 소년으로 있을 그들을 위해서.
일찍이 꽃피웠던 이야기를———



 

 

 

 

 

 

-prologue-
와그 부부의 반생


                     ———스에미츠 켄이치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려버릴 거야.” 소녀는 말했다.
말과는 정반대로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지만, 소녀의 눈빛은 흠뻑 젖어 있는 듯 했다.
그 소녀가 부모의 앞에서 모습을 감춘 뒤 이미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있었다.


*       *       *       *       *

와그 부부에게 있어서는 염원하던 첫째 아이였다. 그건 염원이라고 하기 보다 비원(悲願)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동갑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남매처럼 자라온 와그 부부. 어른이 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듯 혼인을 했다. 부부가 된 당초부터 아이를 바라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에게 있어서 ”뭐든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건 이미 익숙한 인생이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도 살아가는 데 있어 하나의 재미라며, 부드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두 사람은 살아왔다. 서로를 지탱하며 기쁨도 슬픔도, ‘생’에 관련된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그런데. 부부가 50세를 넘었을 즈음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부인이 임신을 한 것이다. 인간종보다도 평균수명이 긴 흡혈종(정확하게 말하자면 흡혈인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령 출산임에는 틀림 없었다. 출산에는 리스크나 여러 불안———예를 들어, 건강상의 문제라거나 경제적인 사정이라던가———이 따라오게 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당황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진심으로 ’하늘에서 내려준 아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리라 맹세하였다.


시간은 흘러 부인은 출산을 맞이한다. 난산이긴 했지만 모자 둘 다 출산이라는 큰 산을 넘어섰다. 부부는 촉진제에 의한 조기 출산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고령의 모체에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태어난 아기는 미숙아였다. 태어났을 무렵엔 장기의 발달에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인가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당황하는 일도 망설이는 일도 없었던 두 사람은, 거기서 강렬한 죄악감과 직면하게 된다.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방도도 없는 고난을 줘버린 게 아닐까 하고. 그 죄악감은 그대로 와그 부부의 아이에 대한 헌신으로 모습을 바꾸어 갔다. 와그 부부는, 아이의 완전한 봉사자로서의 인생을 택한 것이다.  

부부는 태어난 아이에게 ‘코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린 시절엔 곧잘 아프곤 했지만, 그때마다 부부는 몸을 바쳐 코나의 간병에 임했다. 노년인 부부에게 있어서 병약한 아이의 육아는 고행에 가까웠다. 몸과 마음 둘 다 심각하게 피폐해진 모습이 현저했다. 하지만, 부부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아무리 괴로운 상황이 있어도, 마음의 풍족함은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 아이를 위해서, 였다. 부부의 이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자기희생적 육아가 보람 있게, 코나는 무럭무럭 성장해갔다. 10살을 맞이했을 때에는 동년배 아이들과 별반 다름 없는 생활을 보낼 수 있게까지 되었다. 코나도 어린 마음에 부모에게서 받는 애정이 특별한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엔 손녀와 조부모 같은 세 사람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족이라고 믿고 있었다. 성장한 코나가 어느 시기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흡혈종의 소녀소년들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성장과도기인 마유기.
코나도 14살 생일을 맞기하기 조금 전에 그 징후가 나타났다. 그것은 갑자기 기성을 지르는 것으로, 전형적인 마유기의 초기 증상 중 하나였다. 마유기에 들어간 흡혈종은 클랜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 투약에 의해 증상을 컨트롤 받으며 보호, 관찰, 교육, 교정이 이루어 지는 게 관례였다. 혈맹의회의 옥성성(*玉成省 훌륭한 사람을 육성하는 기관?)의 통지에 따라 마유기를 맞이한 코나도 클랜의 입소가 정해진다. 마유기 시즌 동안만의, 잠깐의 이별일 터. 내일 클랜으로 향하는 마차에 코나를 태울 생각을 하면, 와그 부부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올랐다.
전날 밤, 마유기 동안은 더 이상 보지 못 할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기 위해, 부부는 코나의 침실 문을 열었다. 쌀쌀해———실내인데, 방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커텐이 흔들리고 있다.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코나의 모습이 없다. 시트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그렇게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클랜에 가는 게 싫어서 창문으로 빠져나간 걸까? 아니, 클랜에서의 생활을 기대하고 있던 아이였으니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누군가가 창문으로 침입해서 코나를 데려간 걸까?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서? 와그 부부는 그 시점엔 그게 딸과 평생의 이별이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부부는 필사적으로 코나의 행방을 찾았다. 하지만 살고 있는 오두막집 주위는 물론이고, 마을 안을 구석구석 찾아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엔 마을 유지들의 도움을 빌려 주위의 숲이나 강까지 이 잡듯이 뒤지는 수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코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수색은 행해졌지만, 결과는 같았다.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한채 시간만이 무정하게 지나갔다.


수색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마유기에 의한 돌발적인 행동이겠지”라며, 마을의 누군가가 말했다. 실마리 없는 수색에 지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 결론에 매달렸다. 어떤 마을 사람은 “그러다 돌아오겠지.”라며 근거도 없는 위로의 말을 부부에게 건냈다. 수색대는 한 명 또 한 명 인원이 줄어, 끝에는 와그 부부만 남게 되었다. 부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코나의 행방을 계속 찾아다녔다. 주위의 산중이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 발을 옮겼다. 단서의 기척조차도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와그 부부는 집념있게 포기하지 않았다. 늙은 몸을 혹사하며 어딘가에서 불안해하고 있을 딸을 계속 찾았다. 찾았을 때에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무서운 경험을 한만큼,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그녀의 행복을 위해 다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코나를 찾아내야지. 그게 와그 부부에게 남겨진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코나가 실종된 그날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와그씨는 이미 100살을 넘긴 고령이 되어 있었다.
여위어서 홀쭉해진 몸을 지탱하도록 지팡이를 짚으며 깊은 숲을 걷고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정도의 근력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흡혈종의 강인한 신체 능력 덕이겠지. 부인은 20년 정도 전에 병으로 타계했다. 임종 마지막까지 마음에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딸의 일이었다. 부인을 잃은 후에도 와그씨는 코나의 수색을 이어갔다. 그건 이제와서는 수색이 아니라 ’정처없는 여행‘이었다. 깊은 숲에 들어선지 벌써 7일째에 이르기 때문에, 지금 상황만 놓고 보자면 ‘조난’이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혈맹의회에 의해 금족지로 정해진 토지.
그 숲에서는 사냥은 커녕 출입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와그씨에게는 관계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인가 코나의 행방을 찾기 위해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들어간 적이 있다. 혈맹의회로부터 신병이 구속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와그씨에게 있어서 그곳이 금족지이건 뭐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이제 방향조차도 알지 못한는 깊숙한 숲. 눈 앞에 상처를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슴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와그씨는 주저없이 사슴에게 달려들어, 그 생피를 후루룩 마셨다. 숲에 들어온 후 처음하는 식사였다.
혈액을 충분히 마신 후 문득 얼굴을 들자, 안개가 낀 숲 안쪽에 건물 그림자가 보였다.
와그씨는 피로 번들거리는 입가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빨려들어가듯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겉보기엔 폐허 같았다. 신기하게도 와그씨의 눈에는 그 폐허가 아직 숨쉬는 것처럼 보였다. 폐허는 벽에 둘러 쌓여 있었다. 와그씨는 벽을 따라 걸어서 철책으로 만들어진 정문까지 도달한다. 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한 명의 소녀가 서있었다.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려버릴 거야.” 소녀는 말했다.


숲은 안개가 껴있긴 했지만,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다. 대기는 수분을 머금고 있었지만, 비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녀의 그 기묘한 발언은, 와그씨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더욱 중대한 일에 그는 마음이 빼앗겨서, 두 눈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코나.” 하고, 신음하듯 내뱉었다. 50년 가까이 찾아 헤매던 사랑하는 딸이, 그 날 그 모습 그대로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만약 소녀가 코나와 빼다 박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딸인지, 그게 아니라면 손녀일지, 어쩌면 아주 닮기만 한 관계없는 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그씨의 머리에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고, 단지 하나의 확신만이 있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틀림 없이 사랑하는 딸 코나라고.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코나는, 행방불명되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왜 나이를 먹지 않고 소녀인 모습 그대로인 거지? ……아니, 그것보다도……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와그씨는 황급히 철책을 기어올라, 건물 부지로 들어가자마자 소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줄곳 꿈꿔왔다. 딸을 이 손으로 안을 그 날이 오는 것을. 소녀는 거부하지도 않고, 멍하게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노인에게 안겨있는 것이, 신기하게도 안락했던 것이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다가온 소년이 그리 물었다. 소년은 유화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와그씨는 소녀를 보호하듯 자세를 바꿨다.
“……너도……여기에 납치당해서 온 게냐?”
와그씨는 경계하며 소년에게 묻는다. 소년은 후훗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납치당해서 왔냐고요? 아니에요. 여긴, 우리들의 클랜이에요.”
소년의 말에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그 말이, 실체 없는 것으로 느껴졌으니까.
와그씨는 소녀의 손을 잡고 그곳에서 떠나려고 했지만, 곧바로 소년이 앞길을 막았다.
“그녀를 어쩔 셈이죠?”
“……계속 찾고 있었다……드디어 찾았어……코나는, 내 딸이야. 여기서 데려가겠어……”
“그녀는 코나가 아니에요. 거기다……당신에게 딸 같은 건 없지 않았나요?”
그 말에 와그씨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코나는 내…… 우리의 소중한 딸이야!” 다음 순간, 소년이 와그씨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깨물었다. 놀랄 틈도 없었다. 와그씨는 그대로 밀려 땅에 쓰러진다.소년은 천천히 일어나, 곁에 있던 소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소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어…… 그 사람은 누구야?”
그 그리움의 의미를 소녀 자신은 알 리가 없었다.
“길을 잃었던 게 분명해, 이 사람. 어쩌면 싫은 일이 있어서 가출한 걸지도 모르고. 괜찮아, 깨어나면 싫은 일도 전부 잊을 거야.”
소년은 형식 뿐인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자,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어. 몸이 젖으면 좋지 않아. 건물 안으로 돌아가자.”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다. 소년이 권하는대로 소녀는 그 장소에서 멀어져간다. 도중에 멈춰서서, 아쉬운 듯 땅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바라보는 소녀. 아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소녀는 결국 알 수가 없었다.


*     *     *     *     *

며칠 후, 어느 거리의 빈민굴. 커다란 객실에서 와그씨는 눈을 떴다.
몸이 지독하게도 피로했다. 긴 사냥 여행에서 수확도 없이 돌아온 듯, 공허한 허탈감이 몸을 덮쳐왔다. 자신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큰 방을 같이 쓰는 남자가 와그씨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이, 전에 어딘가의 거리에서 만났었지. 분명, 꽤나 옛날에 사라졌다는 딸을 찾고 있었는데. 그래서, 딸은 찾은 거야?”
와그씨는 의아한 얼굴로 남자를 봤다.
“…….딸? 내게 딸 같은 건 있었던 적이 없어. 당신은, 나와 누군가를 착각한 거겠지.”
그렇게 말하고, 와그씨는 기분이 나쁜 듯 방을 나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와그씨는 생을 마감한다.
그 시체는, 부인의 무덤 앞에서 발견되었다. 사인은 아사였다. 소지품 중엔 유서 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엔 떠나간 부인에게 보내는 사죄와,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아.” 라는 회한의 말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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