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Pong!
작성일
2023. 7. 18. 00:22
작성자
완키


그녀는 거짓을 안다

feat.스노우

                            ———칸라 치우메





스노우는 거짓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어떤 때는 소리로.
그건 어떤 때는 색으로.
그건 어떤 때는 형태로.
그건 어떤 때는 물결로.
그건 어떤 때는 냄새로.
그건 어떤 때는 온도로.
그건 어떤 때는 기척으로.
그건 어떤 때는 예감으로.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투성이. 이 세상은 거짓으로 흘러 넘쳤다.


거짓은 다양한 징조로 나타난다. 그 징조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스노우는 ‘알다’라는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알다‘가 마유기의 증상에 의한 것인 줄, 처음에는 몰랐다.
그때까지는 아주 사이가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두 사람의 딸로 있는 것이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신님 고마워요, 이런 부모님의 아이로 있을 수 있게 해주셔서. 그렇게 감사한 적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게 거짓이란 것을 ’알았다‘.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고백 받은 것도 아니었다. 밀고를 받지도 않았다. 다만, ’아는’ 것이 가능했던 거다. 스노우는 그것을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슬픔에 매일 밤 울었다. 눈이 부을 정도로 운 그녀를 부모님은 걱정해주었다. 그 걱정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은, 최소한의 구원이었다.
마유기는 그녀에게 많은 거짓을 알게 했다. 친구와의 약속도 거짓이었다. 스쳐가는 오빠의 인사도 거짓이었다. 혈맹의회가 새롭게 성립시킨 법안도 거짓이었다. 가끔 우리 집에 들리는 근처의 들고양이. 먹이를 갈구하는 냥냥 거리는 울음 소리. 거짓이 아니야. 응석 부릴 때의 골골거리는 소리. 거짓이 아니야.
고양이는 자주 스노우의 무릎 위에서 잠을 청했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는 거짓이 적다. 스노우는 특히 고양이가 좋았다. 자연계에도 거짓말쟁이는 있는 듯 하다. 낙엽 나비, 대벌레, 자벌레 등. 몸을 지키기 위한 의태라는 거짓이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을 뿐이지만, 그 거짓이 스노우는 싫지 않았다. 사마귀는 싫었다. 사마귀의 거짓은 포식 대상에게서 몸을 숨기기 위한 것이니까.


클랜에 오고나서도 그녀는 많은 거짓을 ‘알았다’.
많든 적든, 누구나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다. 스노우는 그 즈음엔 완전히 거짓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다. 공기가 당연히 있듯이, 거짓은 여기저기에. 오히려 거짓이 없으면 세계는 잘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적정량의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다. 용법만 틀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은 오히려 좋았다. 대부분의 거짓말이 싫었지만, 좋아하는 거짓말도 있다.
“또 보자.” ———같은 것이라면.
그건 거짓이긴 하지만, 완전한 거짓이라곤 할 수 없었고, 바람 같은 것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거짓이 진짜가 되는 일도 있다.


그런 스노우였기에 조금 뒤 클랜에 들어온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인상 깊은 일이었다. 그녀———릴리에게는 거짓이 없었다. 누구나가 풍기는 거짓의 징조가, 그녀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아무리 스노우라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아침의 인사도, 점심의 인사도, 저녁의 인사도.
웃고 있어도, 화내고 있어도, 차분히 있어도.
따분해 보일 때도, 즐거워 보일 때도.
특히, 졸려 보일 때는 더욱.
어디에도 거짓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흡혈종과 만난 것은 마유기가 되고난 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마치 고양이 같은 아이, 라고 스노우는 생각했다.


스노우는 금방 릴리와 친해졌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까지 거짓말을 해야한다. 스노우는 그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한 타인과는 엮이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이 편했다. 당연히 만나야 할 인연이라 만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무언가의 대화에서 튕겨나오듯 릴리가 말한 적이 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스노우. 우리는 절친이잖아?” 그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고로 스노우는 언제나 릴리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절친. 하지만 위화감이 있다. 릴리와 함께 있으면 희미하게 느끼는 죄의식. 원인은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거짓이었다. 자신이 이 클랜에 오기까지의 추억이 죄다 거짓이었던 것이다. 스노우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안다한들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노우, 라는 이름도 거짓이다. 진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있는 이 사나트리움 클랜도 거짓이다. 거짓이라는 걸 ‘아는’ 것은 가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거짓으로 덧채워져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징조는, 내용의 설명까지 수체적으로 해주는 건 아니니까.
어느새 자신이 이렇게 거짓투성이가 된 걸까. 모르겠어. 이해할 수 없어. 짐작 가는 곳이 없어. 정체를 모르는 공포심이 가슴에서 차올랐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포함한 거짓의 세계. 적요한 밤의 암흑에 보이는 단 하나의 등불 같았다.


“안녕, 스노우.”
”안녕, 릴리.“
오늘도 또 거짓의 세계에서, 단 하나의 진짜를 발견한 기분으로 있을 수 있어. ”있지, 나 좋아해?”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떤 답이 돌아오든, 그건 절대로 거짓이 아니야.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투성이. 그런데도, 그녀만큼은 거짓이 아니야.
마치 기적 같아.


내 마유기는 릴리와 만나기 위해 있는 걸지도 몰라———스노우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반대로. 거짓 그 자체인 그가 있었다.
팔스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것이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남자 기숙사의 감독생. 때때로 희룽거리며 여자 기숙사에 놀러 오고 있었다. 여자애에게는 비교적 인기가 있다. 그에게 구애 받고 날아가듯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학생에게도 싹싹하게 대하는 그에게는, 남자 기숙사에서도 여자 기숙사에서도 수많은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스노우는 달랐다. 팔스처럼 누군가와 이어져 있기 위한 방법이 거짓 밖에 없다면, 그녀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는 삶을 선택하겠지.
스노우는 팔스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알 수 있었던 어떤 거짓보다도 거짓이다. 세상의 거짓을 전부 모은다면, 그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팔스라는 이름을 사칭하는 흡혈종에게서는 진실성이 파손되어 있었다. 여자애를 꼬시고 있어도, 친구와 떠들고 있어도, 스노우에게는 그가 “놀이”를 하고 있는 걸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풍기는 강렬한 징조는, 냄새다. 아찔할 정도로 거짓의 냄새가 난다. 아니, 이건 악취다. 예를 들 수도 없을 정도의 악취. 억지로 예를 든다면———시궁쥐의 악취?


  마유기가 되고나서 거짓의 세계를 살아온 스노우. 거짓은 거북하다. 거짓은 싫다. 거짓과는 가능한 거리를 두고 싶다. 그렇지만 적자생존해야만 한다. 거짓의 세계에 조금은 순응하려고 노력했던 스노우는, 다소의 거짓에는 관용을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팔스의 거짓만큼은 무리였다. 모르는 척 흘려넘길만한 것이 아니다. 보고서 못 본 척하는 것도 괴로웠다. 절대로 해선 안되는 근원적인 거짓말. 마치 생명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한 금기. 그러니까 스노우는 팔스에게 가능한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다.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모습도, 그의 목소리도, 죄다 거부하고 싶어. 자신도 그렇고 릴리에게도 그랬다. 거짓이 아닌 자를 거짓 그 자체에서 떼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그날의 놀이 상대로 릴리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하필이면.


  오후 2시 정도에 만날 약속을 했지만, 볼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버렸다.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노우는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안뜰의 벤치에는 릴리와 팔스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즐거운 듯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들리지 않아. 떨어진 장소에 있으니까. 릴리가 웃고 있어. 거짓이 없는 미소. 팔스도 웃고 있어. 거짓 밖에 없는 미소. 마치 태양빛과 밤의 어둠이 섞이고 있는 듯한 광경. 순결한 것이 더럽혀져 가는 듯했다. 존엄에 생채기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았다. 표현하지 못 할 절망이 스노우의 전신을 채워간다. 그것과 동시에, 격렬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일각이라도 빠르게 릴리에게서 팔스를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팔스라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거절해야만 해.
스노우는 초조함을 느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발걸음은 무겁다. 팔스를 거절해? 어떻게? 힘껏 후려치면 되는 걸까? 욕이라도 퍼부을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스노우는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버렸다. 눈치챈 릴리가 스노우를 보고 미소 짓는다. 거짓 없는 눈빛. 팔스가 스노우를 본다. 그의 미소는 보고 싶지 않았다.


“담피르 주제에.”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스노우 본인이 놀랐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담피르? 대체 누가 흡혈종과 인간종의 혼혈이라는 거지? 만약 릴리가 담피르였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릴리가 담피르라고 해도, 스노우는 틀림없이 그를 받아들이겠지. 그럼 팔스가 담피르인가?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자신이 그 말을 입에 담은 거지? 스노우는 동요하며 징조의 실을 끌어당긴다———그건, 그에게서 풍기는 냄새다. 그에게서 냄새로 발산되는 거짓의 징조가, 스노우에게 그 말을 뱉게 한 것이다. 징조를 변명으로 삼은 시점에, 말로 나와버린 것은 근거 없는 험담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싸움에서 “바—보! 바—보! 바—보!” 하고, 상대의 지능이나 지식에 관계 없이 그저 폄하하기만을 위해 말하는 것과 같다. 릴리에게서 팔스를 떨어트리고 싶었다곤 해도, 어찌 그리 저급한 말을 해버린 걸까. 그렇게 스노우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 전에, 팔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건 스노우가 ‘알게’ 된, 그의 거짓 없는 눈빛. 거짓 밖에 없는, 거짓투성이의, 거짓 그 자체인 팔스라는 존재가 보여준 민낯. 그렇구나. 그랬었구나……담피르 주제에, 이 녀석은 나의 릴리를 더럽히려고 했구나.
스노우는 다시 한 번, 이번엔 확신과 명확한 적의를 가지고 그를 매도했다. “담피르 주제에.”


그리고나서 스노우는 기억을 잃었다.
이 클랜에 오고나서 받는 두 번째 세례. 팔스의 이니시어티브에 의한 기억 개편이었다. 거짓 세계, 거짓 추억, 거짓 클랜. 스노우는 거짓투성이의 세상에 있었다. 여기서 지낸 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있을 곳 따윈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가능한 누구와도 엮이지 않으려 하는 그녀는 외톨이였다.
하지만 만나버리는 것이다.
거짓이 아닌 그녀를. 스노우와 릴리는 금방 친해졌다. 릴리는 스노우를 “절친”이라고 불러준다. 스노우에게 있어서도 릴리는 “절친”이었다. 그녀만 있어준다면, 스노우는 외톨이가 아니었다.
남자 기숙사의 감독생. 팔스. 때때로 여자 기숙사까지 놀러온다. 인기인. 거짓을 ‘아는’ 것이 가능한 스노우는, 역시 그가 여전히 껄끄러웠다. 여전히 혐오했다. 그런 그는 어느날, 스노우를 놀이 상대로 골랐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야기하는 팔스였지만, 말은 전부 거짓이었기 때문에 스노우는 그가 가엽기 그지 없었다.
“너는 어째서 외톨이야?”
클랜의 인기인에게, 스노우는 무심코 물어버렸다. 팔스는 동요해서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억이 개편된 스노우는 잊어버렸지만, 그건 두번째로 본 그의 거짓 없는 눈빛이었다. 스노우는 팔스의 거짓 얼굴을 또 벗겨내버린 것이다.
”어째서 내가 외톨이라고 생각하지? 이렇게나 클랜에 많은 동료가 있는데?”
전반 부분은 거짓이 없는 질문이었기에, 스노우는 무심코 대답해버린다.
“왜냐면, 너는 죄다 거짓인걸. 아무리 즐거운 듯 굴고 있어도, 아무리 까불거려도, 너는 누구보다도 고독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거짓 그 자체인 듯한 그가, 지금만큼은 그 거짓을 벗어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계속 외톨이니까.”
“너 역시 외톨이지 않아?”
“나에게는……릴리가 있는 걸.”
“릴리는, 아아, 그 아이인가.”
“우린 절친이야.”
“나에게도 절친은 있어.”
징조가 떠돈다. 거짓이다. 또 거짓을 뒤집어썼다. 그래서 스노우는 “거짓말이네.”라며 그대로 솔직히 말했다. 그는 돌연 격앙해서 거칠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나에게도 절친 정도는 있어!”

그는 필사적으로 거짓을 쌓는다. 그건 조금 신기한 거짓말이었다. 거짓과 진짜가 섞인, 거짓과는 별개의 무언가로 느껴진다. “또 보자.”———와 똑같이. 바람이 담겨져 있는 듯한 거짓말. 하지만 그건 바람은 아니다. 다른 무언가. 뭐지, 이 감각은. 스노우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말을 찾았다. 하지만, 여간 말을 고를 수가 없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재료가 있어야 했다.
“팔스의 절친은 누군데?”
그렇게 묻자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이 침묵도 거짓이 아니다. 클랜의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때는 거짓 그 자체인데, 스노우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솔직한 자신의 틈새를 보인다.
“울이야……”
라고, 팔스는 겨우 알려주었다.
“내 절친은, 울이라는 녀석이야.”
유감스럽게도 거짓말이었다. 바람이 담긴 거짓말. 어쩐지 그리운 거짓말. 어딘가 슬픈 거짓말. 너는 이 거짓말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거야?
“울 같은 건 없어.”
스노우는 다시 거짓을 폭로한다.
“너는, 고독하구나.”
그건 위로할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고독하지 않아……네가 나의 뭘 안다는 거야!”
거짓이 벗겨진 얼굴에 분노가 스며있다. 스노우는 릴리가 좋았다. 팔스는 싫었다. 하지만 이 팔스라면 좋아질지도 모른다. 거짓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억 개편에 의해, 스노우는 다시 잊어버린 것이다.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투성이. 이 세계는 거짓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그래도 스노우는 릴리와 만나버린다.


거짓을 ‘아는’ 것이 가능한 스노우는, 너무나도 많은 거짓에 침식될 것만 같아서, 반드시 거짓이 아닌 릴리에게 이끌려버린다. 그녀가 있을 곳이 거기 뿐이었으니까. 그때마다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다. 둘도 없는 친구가. 두 사람이 절친이 되면, 팔스는 기억을 개편했다. 마치 스노우에게 절친이 생기는 것을 금하듯이. 자신의 고독을 받아들이라는 듯.
스노우와 릴리는 아무리 잊어도, 다시 만나고, 친구가 된다. 잊고, 거짓 사이에서 만나고, 끌리고, 다시 친구가 된다. 몇 번이나. 몇 번이든. 그때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친구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7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이변이 생긴다.


스노우에게 팔스가 걸어둔 이니시어티브의 효과가 사라지고 있었다. 영원을 살아가는 불로불사의 팔스. 그가 그 영원의 동반자———울———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 설비인 사나트리움 클랜.
팔스의 혈액에서 정제된 ‘약’에 의해, 불로가 된 소년소녀들이 살고 있는 거짓 화원. 불로이긴 하지만 불사는 아닌 소년소녀들이, 인체 실험을 되풀이하는 악몽의 퇴적물. 그 ‘약’의 한층 높은 효과가 스노우의 몸에 나타난 것이다. 스노우에게는 팔스와 존재적 동화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니시어티브가 들지 않게 된 것이다. 스노우가 자신과 같은 불로불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팔스는 크게 환희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노우를 한 번 죽여보면 되었다. 하지만 팔스는 어찌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실험이 완전하지 않았다면, 죽여버린 스노우는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을지도 몰라. 팔스는 그걸 이상하리만큼 두려워하고 있었다. 울을 두 번이나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노우는 릴리를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지만, 릴리는 스노우를 잊어버린다. 머지않아 스노우는 릴리에게 다가가는 것을 그만뒀다. 거짓 세상, 거짓 추억, 거짓 클랜에서 릴리만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잊는 게 불가능했던 스노우는 릴리와 만나기 위해선 거짓을 꾸밀 수 밖에 없었다. “만나서 반가워.”라는 인사. 그녀와 우연히 마주친 척을 해도, 그것은 거짓이었다. 거짓 그 자체인 팔스를 릴리에게 다가가게 하고 싶지 않았듯이, 거짓 그 자체가 된 자신을 릴리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았다. 스노우는 그렇게 생각한 날부터 릴리와 친구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클랜의 다른 누구와도 엮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는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톨이 스노우, 라고.


이니시어티브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잊어버렸던 기억. 그걸 떠올리게 되는 일은 없었다. 지금 있는 기억은 팔스의 이니시어티브의 영향에서 빠져나온 후의 기억이다. 모두는 잊어도 자신만은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옛날의 일을 떠올렸다.


이미 훨씬 예전의 일, 이 클랜에서 처음으로 릴리라는 소녀와 만나고, 금방 친해지고, 이윽고 서로를 절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독했던 자신이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짓투성이인 세상에서 처음으로 진실과 만날 수 있었던 기적———그 기억을 떠올렸다. 떠올려버리고 말았던 거다. 떠오르지 않았다면, 괴로워 할 일도 없었는데. 그건 이미 몇 백년 전의 일인 건가.
스노우와 릴리, 두 사람의 소중한 추억은 지금은 혼자만의 추억.


이니시어티브의 주박에서 벗어난 스노우는, 언제든 클랜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클랜 밖의 세계에선, 이미 몇 백년이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자신의 가족도 친구도, 오래 전에 죽어버렸겠지. 거기다 ‘약’이 없으면, 불로의 몸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 있으면서 ‘약’만 마신다면, 영원히 살아갈 수 있어. 거짓된 영원을. 그 사실은 스노우를 크게 곤혹시켰다. 영원이, 역설적으로 그녀 안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 탓에 스노우는 죽음을 항상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극단적일 정도로 그것을 두려워하게도 되었다. 거짓이야. 거짓이야. 거짓이야. 내가 죽을 리가 없어. 스노우는 살아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이 거짓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거짓을 ‘아는’ 것이 가능했다.


스노우는 언제나 외톨이.
클랜의 안뜰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즐거워하는 소녀들의 무리 속에서 릴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웃고 있다. 거짓이 아니야. 행복해 보인다. 거짓이 아니야. 일찍이 친구 사이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스노우 뿐이다. 하지만 분명 릴리니까. 저 소녀들 안에서도 친구는 있겠지.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면. 스노우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세상의 거짓을 삼켜내보인다.
자신은 바라보기만 해도 돼. 거짓 없는 눈빛을. 거기에 있는 확실한 존재를. 릴리라는 소녀가 행복하게 있는 것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러니까 부탁이야. 적어도 이 영원한 거짓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내가 알게 되어버린 것을 그녀가 모른채로 있어주길———스노우는 그렇게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수십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평화롭고 행복한 클랜을 유지하기 위해 기억 개편은 때때로 발동되었다. 클랜에서 누군가가 없어지는 때, 그 존재는 함께 지내온 기억째로 없어졌다. 옛날에 이곳에 있었던 실베치카라는 소녀도 모두에게서 잊혀져버렸다. 마유기 소년소녀들의 기억에서는, 좋지 못 한 사실이 제거된다. 신기하게도 팔스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니시어티브를 행사하지 않았다. 뭐든 이니시어티브로 자유롭게 굴 수 있는 거짓 화원에서, 팔스는 어째서인지 폭군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 하나. 스노우와 릴리가 친구가 되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담피르 주제에.” ———그 말이, 그의 건드려선 안 될 영역을 침범해버린 걸까. 그게 아니면 자신이 품고 있는 것과 같을 만큼의 고독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 이외에는 그저, 잔잔한 시간이 흘러갈 뿐이었다.
스노우는 줄곳 외톨이인채. 혼자서 오늘도 또 거짓 세상에 소녀의 몸을 침투시켜 간다. 스노우를 멀리서 에워싼 소녀들이, 소근소근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챘다.


스노우는 이상한 여자 아이.
언제나 쓸쓸해 보여.
하지만 누구와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아.
스노우는 이상한 여자 아이.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얼음 같이 차가운 눈빛.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이 정도의 거짓이라면, 이미 익숙했다.
스노우는 거짓투성이인 자신을 ‘안다’. 누구와도 친해지고 싶지 않아. 고결하고, 냉철하고, 무뚝뚝하게. 말을 걸어봤자 헛수고야. 다과회에 초대한들 무시할 뿐.

외톨이 스노우.
외톨이 스노우.
외톨이 스노우.









<꽃말>

스노우 플레이크(은방울 수선화)

‘무구’ ‘불결하지 않은 마음’
’당신의 죽음을 소망합니다‘

수선화를 닮은 잎을 가지며, 또 은방울과 같이 종모양의 꽃을 아래를 향해 피우는 것에서 일본명칭으로 은방울 수선화라고 불리고 있다.
꽃말은 ’무구‘ ’불결하지 않은 마음‘ 등으로, 그 청초하고 가련한 꽃의 모습에 유래해서 붙여졌다. 한편으론 아주 견고한 성질을 가져, 가을에 구근을 심으면 이듬해 2월에는 잎이 나고, 3월 중순에는 꽃이 피며, 수년간 개화한다. 또, 유독하며 잘못 먹으면 식중독을 유발한다.
닮은 꽃으로는 ’눈의 물방울‘이란 이름을 가진 스노우 드롭이 있다. 스노우 플레이크가 종모양 꽃을 피우고, 꽃잎이 6장으로 나뉘어 있는 것에 반해, 스노우 드롭은 3자씩 떨어진 길다란 외화피와 짧은 내화피를 가진 육변화로, 개화 시기도 다르다. 참고로 스노우 드롭의 꽃말은 ’당신의 죽음을 소망합니다‘. 하얀 꽃잎에서 ’수의’가 연상되어, ‘사자에게 바치는 꽃’이었던 게 유래가 되었다. 본편에서는 양쪽 꽃말 모두의 의미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