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P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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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9. 24. 17:06
작성자
완키

 

2023년 가을에 개회 예정인 콘서트 투어를 기점으로 모닝구무스메 및 하로프로젝트를 졸업하는 후쿠무라상의 졸업 연재. 제 2회는 2012년의 일을 돌아봅니다. 선배의 졸업이나 신멤버의 가입이 계속 이어지는 격동의 나날, 여러 나라나 장소에 갔던 즐거운 추억 등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네칭 필름"으로 익숙한 후배인 12기 멤버 하가 아카네상이 카메라맨으로서 특별 참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후쿠무라상의 스페셜 포토레이트에도 주목입니다.

 

 

동기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라이벌이기도 했던 10기와의 관계성

 

ーー2012년은 1월에 10기 멤버가 가입하고 첫 싱글 'ピョコピョコウルトラ'가 발매 되어, 본격적인 신체제가 스타트합니다. 이 부근부터 이벤트나 미디어 등에서 "9기VS10기"처럼 갈라지는 기회가 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돌아보니 어떤가요?

 

 9기와 10기에 더해서 스마이레이지(현 안쥬르므)의 신멤버라는 동세대 모임으로 '~가치☆키라~'라는 배틀 이벤트 같은 것을 했던 것도 이 해였네요. 확실히 무언가 배틀을 하고 있었네요(웃음). 그립다...!

 

 

ーー2011년에 10기 오디션이 개최된다고 들었을 때는 "우리는 틀렸다는 걸까"라고 시무룩해졌다는 이야길 하셨는데요, 실제로 함께 활동하게 되고나서 변화는 있었나요?

 

 가입 시기가 반년 밖에 차이나지 않아서, 일단 경어는 쓰고 있었지만 마음적으론 동기 같은 감각이었어요. 일단 동갑인 아유밍이 들어와준 게 기뻤어요. 동갑이라는 것만으로 엄청 안심되는 느낌이 있었던 걸 기억해요. 그리고 그때까지 제 안에서는 9기 멤버 3명이 엄청 개성적인 존재였는데, 더욱 개성적이라고 할까, 강렬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이 들어온 감각이었어요. 뭐라고 할까......엄청 망나니들이었어요(웃음)! 10기는 어쨌든 어디에 있어도 활기차고, 항샹 떠들석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 대비로 9기는 10기보다 차분한 아이들 같은 이미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엔 9기와 10기로 어린애들 싸움 같은 걸 많이 했던 기억도 있네요(웃음).

 

 

ーー당시 10기에 대해 라이벌심 같은 건 있었나요?

 

 9기 멤버로 모여서는 "반년이지만 우리가 선배니까, 뭐든 10기보다 잘 할 수 있게 해두자"같은 이야길 자주 했었고,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10기는 일 하는 중에도 관계 없이 소란을 피우거나 놀아버리는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참을 수 없게 되어서 9기가 부글부글하는 일도 꽤 있었네요(웃음). 하지만 선배들 안에선 2011년에 많이 고생을 한 것도 있어서, 9기=문제아라는 인식이라,  그 반동도 있었는지 10기는 그다지 혼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저희도 어렸다는 느낌이지만, '10기는 룰을 지키지 않고, 지각도 하는데 어째서!'라는 마음이 9기 안에서 커지고 있었네요(웃음).

 

 

ーー그야말로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네요(웃음).

 

 정말 그래요(웃음). 당시 10기의 문제아라고 한다면 마사키쨩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것 같지만, 두도 그 시절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먼 곳에서 전철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전철에서 잠이 들어버리거나 했어요. 지각에 대해서는 물론 매니져상들이 제대로 혼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10기는 애교가 있어서 귀여워, 같은 느낌이 되어버려서(웃음). 거기서 불만을 가진 9기의 결속력이 점점 올라가는......그런 도식이 되어갔네요(웃음).

 

 

그룹을 지탱하던 선배들의 졸업에서 느낀 초조함

 

ーー반대로 10기와 공감을 느낀 일이라던가, 9기에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일은 없었나요?

 

 물론 있어요! 아까는 조금 푸념 같은 이야기를 해버렸지만(웃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린애였던 당시의 마음이고. 주위에서 비교 당하거나 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까운 존재였네요. 실제로는 혼날 때 함께인 적도 많았고(웃음). 지금과는 또 다른 엄격한 환경 밑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았어요.

 

그리고 10기라는 존재는 9기에게 엄청 좋은 자극을 가져다 줬어요. 틀을 깨부실 계기로 이어졌거든요. 각각 4명씩 있어서, 팀전 같은 분위기로 무언가 있을 때마다 서로 양보하지 않는 정신을 전개해서, 왁-하고 분위기가 오르는 흐름이 생겼기에 9기도 사양하지 않고 자신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지금은)옛날 같은 기세는 없어졌지만, 그런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온 신뢰감은 지금도 저희 안에 제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ーー2012년은 '나카이 마사히로의 블랙 버라이어티'나 '와랏테이이토모!'등 인기 TV 방송에 출연했네요. 반향도 컷지 않았나요?

 

 네. 정말 엄청 감사한 기회였어요. 지금도 팬분들에게서 "재밌었어"라고 듣기 때문에, 인기 방송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시 9, 10기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이해를 못 해서, 평소의 연장선은 아니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서로 양보하지 않는 정신 전개로 참가했었어요. 그저 천진하고, 무서움을 몰랐기에 내보일 수 있었던 파워 같은 게 그때는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ーー거기에 스마이레이지의 신멤버가 더해지면 어떤 느낌이 되었나요?

 

 9, 10기만이라면 폭주하기 십상이지만(웃음), 스마이레이지에게는 무슨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리나뿌라던가 하로프로에그 시절부터 계속 친하고 서로 잘 아는 아카리쨩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마음 든든했고 엄청 안심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메이메이는 엄청 이글이글해서, 그 느낌은 전해져오고 있었네요(웃음). 제가 아카리쨩과 너무 친해서 "우리의 타케쨩을 뺏어가지 마"라고 들은 일도 그리워요(웃음). 하지만 카나난도 포함해서 다같이 모이면 엄청 즐거워서, 개성이 겹치지 않는 12명의 동기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요.

 

 

ーー그리고 신체제가 되고 얼마 있지 않아 니이가키 리사상, 미츠이 아이카상이 졸업했습니다. 그 타이밍에 9기는 갑작스럽게 중간 관리직 같은 위치가 되었습니다만, 그 상황을 당시엔 어떻게 느끼고 있었나요?

 

 다시 돌아보면 멤버 프로필 등에서, 위에서부터 셌을 때 3번째의 멤버가 됐던 것은 당시의 저에게 있어서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9기끼리 힘을 합쳐서 힘을 내려곤 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선배와 후배를 잇는 듯한 일은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ーー더욱이 11월에는 다나카 레이나상이 다음해에 졸업한다는 발표가 있었어요. 그때의 심경은 기억하고 있나요?

 

 이건 선배가 졸업할 때마다 생각한 건데요, "끝나가버리고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모닝구무스메가 끝나버린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다나카상은 모닝구무스메의 노래에는 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정말 어떡하지 하고 상심했어요. 하지만 남겨진 시간으로, 제대로 다나카상의 노래 소리에서 무언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마음도 제 안에서 생겼어요. 그래서 다나카상이 졸업 발표를 하시고나서는, 보다 다나카상의 노래 소리를 들으려고 의식하며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레코딩을 견학하거나, 라이브 중에 음원보다도 다나카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나카상은 정말 대단해요. 라이브 중에 예를 들어 다른 멤버의 박자가 어긋나도 혼자서 계속 깔끔하게 노래를 이어간다고 할까. 목소리의 대단함은 물론이지만, 리듬이 완벽해요. 실제로 졸업하신 후에도 '다나카상이라면 어떻게 하려나'라고 생각하며 레코딩하거나 노래의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그룹의 단락이 되는 타이밍에 느낀 것, 해외의 팬과 대면한 추억

ーー힘들었던 일이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2012년에 기뻤던, 혹은 즐거웠던 추억은 무엇인가요?

 

 2011년은 가입하고 바로 노래에서 큰 벽에 부딪쳤지만, 그렇기에 노력해야한다는 마음이 엄청 있었어요. 그러니까 2012년에 발매된 싱글인 '恋愛ハンター'에서 처음으로 코러스 REC에 도전하게 되었을 땐 정말 기뻤어요. 코러스는 뭔가 약간의 특별감이 있잖아요. 그리고 무대 '스테이시즈 소녀재살가극'. 대사도 적은 역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노래로 힘내자고 생각하며 몰두했었어요. 그랬더니 다나카상에게 칭찬 받아서, 그것도 정말 기뻤어요. 자신의 노력을 평가 받은 것으로, 노래에 대해서 조금 자신을 가질 수 있었고, 보다 노력해야지-! 하고 모치베이션이 엄청 올라갔습니다.

 

다나카상은 꽤나 신경을 써주셔서, 레코딩 때에 "후쿠쨩, 이쪽으로 와!"라며 가까이 불러주시고 "레이나의 옆에서 노래해봐"라고 해주신 적도 있어요. 엄청 기뻤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어요.

 

 

ーー2012년은 그룹 첫 세계 악수회 투어도 있었네요. 해외에서의 추억도 있다면 알려주세요.

 

 세계 악수회 투어도 엄청 즐거웠어요! 고교생 이상의 멤버만이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치시게상, 다나카상, 하루난, 아유밍과 저 이렇게 5명이 그룹을 대표해서 타이베이, 방콕, 파리, 서울에 갔어요. 신멤버 중에선 연상조라는 이유로 평소엔 무언가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었지만(웃음), 이 때 만큼은 연상조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네요. 선배들과 함께 'Be Alive'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기뻤고, 다나카상과 하루난의 생일을 팬분들이 서프라이즈로 축하해준 순간에 같이 있었던 것도 인상에 남아 있어요. 악수회에서의 거리감이 일본과는 전혀 달르기도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지만(웃음), 어쨌든 '엄청 귀중한 경험을 해보고 있구나'라고 감동의 연속이었어요. 일단, 공항에서 기다려주시는 팬분들이 있었던 게 충격이었어요. 실제로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해외에도 우리의 팬이 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 중에는 저의 하로프로에그 시절의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어서, '이렇게나 응원해주시니까 좀 더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야지'라고도 새삼 생각했어요.

 

 

ーー지금의 모닝구무스메에 빠질 수 없는 명곡 'One.Two.Three'가 발매된 것도 2012년이네요. 추억에 남아 있는 일이 있나요?

 

 'One.Two.Three'는 50번째 싱글이라서, 엄청 단락이라고 할까, 저희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한 곡이에요. 히트 기원을 하러 토치기의 닛코 동조궁을 방문했던 것도 인상에 남아 있어요. 2012년은 활동을 통해서 정말 여러 장소에 갈 수 있었던 한 해였어요.

 

그리고 'One.Two.Three'를 발매했을 정도의 타이밍부터 동성 팬분들, 신참 팬분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원래부터 남성이나 여성이란 것을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더욱 다양한 층의 분들이 알아주시는 게 순수하게 기뻤어요. '걸즈 어워드'에서 퍼포먼스했을 때의 기억도 엄청 남아 있는데, 여성에게만 둘러쌓여서 여성의 성원이 잔뜩 들려오는 스테이지가 당시엔 처음이었기 때문에 엄청 신선했고, 동시에 기뻤어요. 실은 그때 그 장소에, 지금은 츠바키팩토리의 멤버인 오노 미즈호쨩이 있었나본데, 그때부터 팬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나중에 듣고 엄청 기뻤어요.

 

 

2012년에 느끼고 있었던 것, 전환기를 느낀 타이밍에 대해

ーー똑같이 당시의 신체제 모닝구무스메를 대표하는 앨범 '⑬컬러풀 캐릭터'가 발매된 것도 2012년이죠.

 

'⑬컬러풀 캐릭터'는 특히 정말 좋아하는 앨범이에요. 선배 두 분에게는 각자 솔로곡이 있고, 9기와 10기는 '笑って! YOU'라는 악곡을 받았어요. 라이브에서 인기인 'ドッカ~ン カプリッチオ'도 이 때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역사를 느끼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론 이 때의 의상도 엄청 귀여워서 그것도 인상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 타이밍이라면 이미 오다가 가입해있네요. 가을 투어에서 발표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도 엄청 기억에 남아 있어요.

 

 

ーー11기의 가입 타이밍도 10기에 이어서 빨랐죠. 당시의 심경은 어땠나요?

 

 신멤버 오디션이 있다고 들었을 땐 '또......!?'라고는 생각했어요(웃음). 물론 초조함은 느꼈지만, 10기 때 한 번 경험한 것도 있어서 멘탈은 그렇게까지 떨어지지 않았어요. 반대로 10기는 꽤나 쇼크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와 똑같이 '우리론 안됐던 걸까'라던가 그런 것을 생각해버렸으려나.

 

 

ーー실제로 11기로서 오다상이 들어왔을 땐 어땠나요?

 

 오다는 옛날부터 정말 전혀 낯을 안 가리는 아이에요. 겁을 내지 않고 선배 멤버에게도 다가와주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안겨서 당황하는 10기를 보고 '좋아, 좀 더 해라 해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웃음). 거기서 10기가 '우리가 더 선배인데'같은 말을 꺼내서 '너희도 9기에게 똑같은 짓을 해왔잖아~!'라고 태클을 걸어보기도 하고(웃음). 오다는 1인 가입이었는데, 보통은 제일 가까운 선배가 4명 있고, 거기다 그 위에 4명이 더 있는 환경에 놓여진다면 위축되잖아요. 하지만 그 부분은 역시 오다, 라는 느낌으로. 다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개성이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아이가 들어와주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10기를 혼자서 애태우게 만드는 귀종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ーー11기 가입의 영향으로 9기와 10기의 관계성에 변화는 생겼나요?

 

 11기 오디션이 있다고 들은 타이밍부터 결속력은 올라갔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싸움도 하고 있었지만(웃음). 하지만 9기가 선배로서 10기에게 주의를 주는 기회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해서, "이대로는 진짜 큰일이야"라는 대화를 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의 그룹에서 진짜 모닝구무스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미치시게상과 다나카상 두 명 밖에 없으니까. 우리 아직 모닝구무스메는 되지 못했지"라는 것도 말했었어요. 우리 신멤버가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로 모닝구무스메가 끝나버린다는 위기감이 엄청 있었기 때문에, 그걸 10기와도 공유하고 싶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땐 10기도 엄청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다같이 '그렇지'라며 단결했던 것을 기억해요.

 

 

ーー2012년을 총괄하면 어떤 해였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네요, 이 해 이상으로 날뛰는 일은 이제 앞으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평생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날뛰었어요(웃음). 그리고 10기 덕분에 자신의 틀을 깰 수 있었어요. 그때까지의 자신은 성격적으로, 예를 들어 "(10기에게)대단해-!"라던가 절대로 직접 말하지 못하는 타입이었어요. 하지만 10기라는 불타오르게 해주는 존재가 있어서, 다함께 떠들썩하게 지내며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된 것은 큰 변화였어요.

 

 

ーー마지막으로 후쿠무라상에게 있어서 2012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날뛰었던 해, 자신을 바꿀 계기를 잡은 해"입니다. 노래의 면에서도 성장은 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다나카상이 졸업한 후에 다나카상의 파트가 거의 오다에게 가버려서. 거기서 또 분해! 아직 멀었구나, 라는 감정이 생기고, 계속해서 노력하자는 마음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노래에 관한 갈등 이야기는 아직 계속된다는 느낌이네요.

 

 

 

 

후쿠무라 미즈키가 야마자키 메이에게 보내고 싶은 1곡

모닝구무스메'18 '自由な国だから'

 

ーー매회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후쿠무라상이 보내고 싶은 모닝구무스메 악곡을 셀렉트. 제 2회는 15기 멤버 야마자키 메이상입니다.

 

 저, 메이의 고음이 정말 좋아요. 엄청 울림이 있고 깔끔해서. 'なんちゃって恋愛'에서 메이의 고음 솔로파트가 있는데요, 거길 부디 여러분도 들어봐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愛してナンが悪い!?'라던가 'わがまま気のまま愛のジョーク'의 솔로 파트도 엄청 좋아요. 본인에겐 자신의 고음이 매력적이라는 자각이 그다지 없는 것 같지만, 멋진 개성이니까 소중히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건 실제로 전달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메이에게는 아직 어린애 같은 부분이 남아 있어서, 그게 엄청 큰 매력인데요, 앞으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갈 뿐만 아니라 여러 테크닉을 손에 넣는다면 정말 장난 아니게 대단한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고음을 무기로 표현력이라는 테크닉을 몸에 익힌 미래의 메이를 이미지하여 '自由な国だから'를 골라보았습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 '공간 지배 능력'같은 표현이 필수 불가결이라고 생각해서, 강한 오오라를 내면서 부르지 않으면 갑자기 가벼운 인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어려워요. 역대 멤버 중에서라면 사토 마사키쨩은 그 부분을 엄청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메이에게는 마쨩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보여주길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