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P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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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9. 28. 15:51
작성자
완키

 

 2013년 가을에 개최 예정인 콘서트 투어를 기점으로 모닝구무스메 및 하로프로젝트를 졸업하는 후쿠무라상의 졸업 연재. 제3회는 2013년의 추억을 돌아봅니다. 전국 동시 악수회나 라이브 하우스 투어 등 그룹에 있어서 첫 시도가 많았던 이 한 해. 어지러운 나날의 와중 그룹이나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진 인상적인 일을 중심으로 들어보았습니다.

 

 

노래에 이어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자신의 과제

─ ─2013년의 5월엔 다나카 레이나상이 졸업하고, 미치시게 사유미상과 9기 이후의 프레쉬한 멤버끼리의 구성인 신체제로. 그 타이밍에 후쿠무라상은 서브리더에 취임되어 위에서 2번째인 멤버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전개가 너무 빠르죠(웃음). 2012년 때도 이야기했지만, 다나카상의 졸업이 정해지고나서는 어쨌든 다나카상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엄청 존경하고 있는 분이기에 더욱, 제가 아프로 살릴 수 있는 무언가를 잡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2013년의 상반기는 어쨌든 필사적이었어요.

 

 

 ─후배 멤버에게 있어서 다나카상은 다시 한 번 어떤 선배였나요?

 

 엄청 후배를 보호해주신 선배예요. 당시 저희는 아직 매니져상에게 혼나기만 했었어요. 그런 때에 다나카상은 바로 알아채시고 "이건 매니져상도 잘못했어"라며 보호해주셨어요. 그렇게 신경써주시는 게 정말 기뻤네요. 

 퍼포먼스 면에서는, 다나카상은 누가 봐도 대단하다는 건 전제로 깔고, 가까이서 보면 더욱 더 대단해요. 정말 배울 점 뿐이었어요.

 

 그리고 2013년에는 선배들과의 거리도 꽤 좁아졌기 때문에, 다나카상과는 이동 중에도 많이 이야기를 했던 것도 인상에 남아 있어요. 당시엔 무서운 이야기가 유행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다던가(웃음).

 

 

 ─2011, 12년은 노래 파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2013년은 어땠나요?

 

 2013년에 들어와서 바로 찬스를 얻었어요. 52번째 싱글 'Help me!!'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솔로 파트를 받았어요. 거기다 2절 후렴의 라스트라는 주목 받을 부분이었기 때문에, 엄청 기뻐했어요.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팬분들이 기뻐해주신 것도 기뻤네요. 마침 이 시기에 '전국 47도도부현 캠페인'등이 있어서 전국 동시 악수회(ZDA)가 시작되었어요. 멤버가 같은 날에 분산되어 전국을 도는 악수회인데요, 혼자서 도는 건 처음엔 불안했어요. 하지만 거기서 "솔로 파트, 잘 됐네!"라던가 "후쿠쨩의 노래가 좋아"등, 격려가 될만한 말들을 잔뜩 해주셔서, 그게 엄청 자신의 힘이 되었어요.

 

 

 ─찬스를 잡은 것으로 인해 더 많은 욕심이 나오기도 했나요?

 

 네. 2013년 봄 투어의 타이밍에 표정의 연구를 더욱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새로운 과제가 나왔어요. 스스로는 항상 열심히 마음을 담아서 노래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영상을 봤을 때 자신의 눈빛이 거의 '무(無)'의 상태라. '나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노래를 전달하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거였는데, 이렇게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라고 엄청 쇼크를 받았습니다(웃음). 그래서 2013년은 노래를 계속해서 열심히 하면서도, 밝게 보이는 표정을 만드는 것도 과제가 되었어요.

 

 

서브리더로서의 고뇌, 새로운 경험에서 얻은 배움

 ─서브리더는 이이쿠보 하루나상과 2인 체제였습니다만, 역할 분담 등은 있었나요?

 

명확히는 없었고, 함께 힘내는 느낌이었어요. 서로 "어쨌든 미치시게상을 우리가 지탱해야만!"이라는 강한 사명감이 있었지만, 당시의 저는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상심하는 일이 많았어요. 하루난은 미치시게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고 깔끔하게 하고 있어서. 그런 모습을 대단하다, 과연이다, 라고 생각하는 한 편, 자신의 한심함에 상심해버리는 때도 있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능숙하게 대화를 걸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까진 아니지만, 그때는 다시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같은 직무를 받은 멤버가 있어서 자신과 비교해버리는 상황은 슬프네요.

 

 무심코 비교해버려서 '하루난이 더 대단해'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동시에, 스테이지 위에서 자신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귀엽지 않구나'라던가 '귀여운 사람이 부러워'라던가, 당시엔 이미 모든 사고 방식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버리고 있었어요. '귀여워지고 싶으니까 화장을 힘내야지!'라던가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전혀 전개되지 않았네요, 그때는. 그러니까 더욱, 악수회 등에서 팬분들이 건내주시는 말에는 정말 구원 받았어요.

 

 

 ─악수회에서 의식하고 있던 건 있나요?

 

 악수할 수 있는 순간은 잠깐이기 때문에, 거기서 가능한 감사의 마음이 전달되도록 한다는 건 옛날부터 의식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꽤나 꾹-하고 세게 잡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웃음). 그리고는 시선의 높이가 상대보다 낮아지도록, 손을 가능한 아래쪽에서 내밀도록 하는 것도 고수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를 빠르게 말하는 연습도 했었네요. 보다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서 어쨌든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한다! 라는 느낌이었어요.

 

 

 ─2013년은 악수회 뿐만 아니라, '나루치카'등으로 전국의 라이브하우스를 돌고 있었죠. 평상시의 홀이나 아레나와는 다른 환경하에서 배운 건 있나요?

 

 '나루치카'는 ;가능한 가깝게(나루다케 치카쿠)'의 줄임말인데요, 이름대로 정말 거리감이 엄청 가까워서, 처음엔 엄청 깜짝 놀랐어요. 분명 저희뿐만 아니라, 팬분들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웃음). 스테이지도 평소보다 작기 때문에 조명에 부딪히거나, 'Help me!!'의 날개처럼 펼쳐지는 포메이션이 넓이가 부족해서 못 했던 것도 충격이라, 엄청 기억하고 있네요. 대기실도 장소에 따라 개성이 있어서, 그 중에는 거울이나 콘센트, 의자가 부족한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때는 멤버끼리 협력하면서 준비를 하고, 그게 엄청 즐거웠어요. 팬분들도 그렇고, 멤버와도 마음이 많이 통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요. 전국 동시 악수회도 '나루치카'도 각각의 장소에 추억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토야마에선 특히 다정하게 맞아주셔서,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신 게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후에 또 갔을 때는 '어서 와~(오카에리)'라고 맬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그리고 첫 사진집 'MIZUKI'가 발매된 것도 2013년이었네요. 지금은 그라비아에서도 대활약하고 있는 후쿠무라상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1권이지 않나요. 당시의 기억은 남아 있나요?

 

 원래 하로프로의 선배들의 사진집을 저도 가지고 있었고, 회사에도 많이 놓아져 있기 때문에, 거의 전원의 사진집을 보고나서 촬영에 임했어요.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제 나름 이미지를 부풀리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엄청 표정이 굳어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는 자신의 표정이 없다는 것에 엄청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시기였으니까 사진을 찍는 것에 지레 겁먹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핑크색의 수영복을 입혀주셔서 기뻐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어요. 완성된 것을 봤을 땐 똑같은 얼굴만 잔뜩 하고 있는 자신이 싫어서 반성 모드였지만, 증쇄하게 되었다고 들었을 때는 순수하게 기뻤어요. 거기다 꽤 드문 일이었던 것 같아서, 성과를 낸 자신을 조금은 칭찬해줘도 괜찮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어요. 사진을 찍히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늘었기 때문에, 표정을 만드는 일도 더욱 연수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있어서 그라비아는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어요.

 

 

 ─표정 만들기에 대해서 전환기가 될만한 에피소드가 만약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시 한번 미치시게상의 촬영을 견학한 것은 엄청 공부가 되었어요. 미치시게상은 촬영된 모든 것이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엇나가질 않아요. '이게 아이돌이다!'라고 감격했습니다. 표현의 바리에이션도 풍부하고 엄청 자극을 받았네요. 그리고 미치시게상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멤버가 촬영할 때도 부지런하게 체크하려고 했어요.

 

 

3작품 연속 오리콘 싱클 랭킹 1위를 거쳐 생긴 결속력

 ─그 외에 2013년에 인상에 남아 있는 일이 있나요?

 

 연말의 이야기까지 나가버리는데요, 첫 카운콘인 'Hello! Project COUNTDOWN PARTY 2013~GOOD BYE & HELLO!~'입니다. 마츠우라 아야상이나 메론기념일 분들 등 동경하는 선배들의 퍼포먼스를 가까이에서 보고 "하로프로다~!"라며 엄청 감동했어요. 모닝구무스메에 가입하고난 후의 몇 년은 정말 자신의 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하로프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찾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싱글 'Help me!!'로 3년 8개월만에 오리콘 싱글 랭킹 1위를 딴 것도 이 해의 뉴스였죠.

 

 1위를 딴 건 기뻤지만, 솔직히 그 당시엔 실감은 전혀 안 났어요. 하지만 FNS음악제나, 6년만에 뮤직스테이션에 나가거나 한 것은, 그런 결과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뻤어요. 마츠코 디럭스상이나 유스케 산타마리아상 등 유명한 분이 미디어에서 저희이 이름을 거론해주신 것도 컷다고 생각하고, 엄청 기뻤어요.

 

 

 ─더욱이 이때부터, 'ブレインストーミング/君さえ居れば何も要らない', 'わがまま 気のまま 愛のジョーク/愛の軍団'가 3작품 연속으로 오리콘 랭킹 1위를 획득했습니다만, 여기서 심경의 변화는 있었나요?

 

 1위가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전원이 다음에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속력도 장난 없었고, 멤버 전원이 전국 동시 악수회에 거는 기합도 대단했어요. 블로그 등에서의 홍보를 힘내기도 하고, 그리고 이벤트에서 광고지를 나눠줬던 것도 기억해요. 어쨌든 새로운 일을 마구 하던 시기였어요.

 

 

 ─'모닝구무스메 콘서트 투어 2013 가을~CHANCE!~'에선 여러분이 가입하고 처음으로 졸업 멤버가 없는 무도관 단독 공연이 있었습니다만,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은 있나요?

 

 이 투어부터 모닝구무스메가 '체력 괴물'이라고 불리게 된 것에 이어지는 구성이 되었어요. 그때까지는 오프닝에서 2곡을 하면 한 번 빠진 후에 영상, 이라는 게 통상적인 흐름이었지만, 이때부터 오프닝에서 7,8곡 연속으로 쉬지 않고 퍼포먼스를 하는 흐름으로 변화했어요. 팬분들도 술렁거렸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다만 이때는 다들 페이스 배분을 이해하지 못 해서, 정말 힘들었어요(웃음). 명확하게 여기서부터 새로운 모닝구무스메가 시작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했기 때문에, 다들 기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룹으로서도 단결되는 느낌은 있었나요?

 

 그렇네요. 미치시게 사유미상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게 컷고, 그게 저희의 자신감으로 이어졌어요. 물론 개개인의 힘든 일이나 분한 일은 많이 있었겠지만, 전원이 모였을 때의 파워는 엄청 느꼈어요.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느낀 그룹의 성장

 ─2012년에는 9기 이후의 멤버는 아직 모닝구무스메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길 했었습니다만, 2013년이 되어서 그 마음에 변화는 있었나요?

 

 2013년은 엄청난 밀도로 여러가지 경험을 하기도 해서, 각자의 의식이 높아져 있었던 것 같아요. 라이브에서 트러블이 있어도 서로 도우며 극복하는 느낌이었고요. 엄청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봄 투어에서 다나카 레이나상이 결석했을 때의 일. 이때 다나카상의 파트가 전부 리호쨩에게 갔어요. 작년까지의 저였다면 '부럽다'라는 감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중압을 짊어지고 있는 리호쨩을 보고 '이건 너무 힘들 것 같아, 도와줘야하는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리호쨩에게 무슨 일이 생긴대도 자신이 커버하겠단 마음으로 준비했었고, 그 마음을 리호쨩에게도 전하며 응원했었어요. 하지만 리호쨩은 혼자서 전부 해냈어요. 정말 존경심 밖에 없었고, 신뢰 관계도 보다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어지러움이 저희를 성장시켜줬어요.

 

 

 ─봄 투어에서는 다나카 레이나상이 회차별 솔로로 피로하고 있었던, 다나카상에게 있어선 데뷔곡인 'シャボン玉'를 최종 공연에선 멤버 전원이, 그것도 전원에게 솔로 파트가 있는 버젼으로 퍼포먼스했던 것도 화제가 되었네요.

 

 파이널에 와서 그 타이밍이 첫피로였네요. 이 날에 졸업하는 다나카상에게 있어서 엄청 소중한 곡이었기 때문에, 다나카상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저희도 엄청 기합을 넣어서 연습했었어요. 엄청 어려운 곡이기 때문에 도전하게 해주셔서 기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전원이 최대한의 진심을 내보이며 노래한 'シャボン玉'였다고 생각해요.

 

 

 ─아주 성대한 2013년이었습니다만, 총괄하면 어떤 해였다고 생각하나요?

 

 전반화 후반으로 자신의 입장이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해였지만, 다나카상과 미치시게상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항상 강하게 있었어요. 엄청 존경하는 선배가 두 사람 있어서 저희도 따라가며 노력했고, 그 악착스러운 느낌이 전부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몇 년이나 몇 년이나 소중히 해온 모닝구무스메를 우리가 바꿔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나 자각이 있었기에 더욱, 완벽하지 않은 모닝구무스메의 상태로 선배를 배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 선배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모닝구무스메에서 졸업하고 싶을테니까, 그 마음에 응하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후쿠무라상에게 있어서 2013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발버둥 치고 있던 해'입니다. 어딘가에서 죄송한 마음이나,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는 건 항상 그래왔지만, 하지만 거기서 무언가 노력할 기력은 있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고 있던 한 해였어요.

 

 

 

 

후쿠무라 미즈키가 오카무라 호마레에게 보내고 싶은 1곡

'いいことある記念の瞬間'

 

 ─매회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후쿠무라상이 보내고 싶은 모닝구무스메의 악곡을 셀렉트. 제3회는 15기 멤버인 오카무라 호마레상입니다.

 

 호마와는 선배 후배의 관계이지만, 엄청 사이가 좋은 멤버예요.  배려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아주 다정한 아이고, 그런 부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호마가 막 가입했을 정도에, '우리가 만약 동갑에 같은 학교였다면 분명 친구였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했던 걸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 정도로 마음이 잘 맞아요. 그러니까 만약, 서로 모닝구무스메가 아니었다고 해도 친구가 되었겠구나 싶어요. 호마는 조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걸까,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엄청 옛날의 자신과 겹쳐요. 하지만 제 쪽에서 보자면 정말 매력적인 아이니까, 자기자신을 많이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호마에게 보내주고 싶어서 'いいことある記念の瞬間'를 골랐습니다. 이 곡은 가사가 아주 멋지고, 함께 꿈을 꿔나가자는 느낌의 내용인데요, 솟아 나오는 에너지가 있어서 엄청 긍정적이게 되는 정말 좋아하는 곡이에요.